오늘도 스포츠

스포츠면 아무거나 다~ 이야기해봅니다

  • 2024. 3. 10.

    by. 오늘도00

    목차

      반응형

      배구의 올림픽 역사

       

       

      배구가 volleyball인 이유

      공을 떨어트려서도 안되고
      잡아서도 안되고
      혼자 연속 2번 터치해도 안돼.
      그런 배구에서 어떻게 혼자 싸울 건데?

      배구 만화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만화 <하이큐>에 나온 대사입니다. 배구가 팀 경기라는 걸 강조하는 대사이지만 배구 룰의 기본이 집약된 대사이기도 합니다. 즉 배구는 공이 코트에 닿으면 득점을 뺏기게 됩니다. 여기에서 vollyball이라는 종목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영어 사전에서 'volly'를 검색하면 ' (테니스·축구 등에서) (공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바로 맞받아치기[차기]'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코트에 공이 떨어지기 전에 공을 상대 코트로 넘기는 경기가 바로 vollyball인 것입니다. 같은 의미로 축구에서는 공에 그라운드에 떨어지기 전에 차는 슛을 '발리슛'이라고 하고 테니스에서도 코트에 공이 닿기 전에 치는 기술을 '발리'라고 부릅니다. 

       

      배구의 올림픽 역사

      배구가 올림픽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24년 파리올림픽에서 입니다. 배구 종주국인 미국이 시범 행사의 일환으로 파리 올림픽에서 처음 선보였는데 단발성 이벤트 형식이었고 이후로 올림픽에서 사라졌다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공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남녀 각각 진행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배구는 비교적 근대에 발명된 종목입니다. 학계에 따르면 1895년 매사추세츠주 홀리요크의 YMCA 체육부장이자 스프링필드 대학에 재학 중이던 윌리엄 G. 모건이 고안했다고 합니다. YMCA 노인 회원들을 위한 실내 체육 겸 놀이로 테니스와 핸드볼 등 다른 스포츠의 일부 특징을 가져와 만들었습니다. 이후 1900년대 최초의 배구 규정집이 만들어졌고 1947년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배구연맹이 창설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기 시작합니다. 국제배구연맹에 의한 세계선수권과 월드컵이 개최되면서 올림픽까지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여자 대표팀 역대 올림픽 성적

      배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부터 한국 여자 배구는 몇 번의 대회를 제외하고 꾸준히 참가해 왔습니다. 가장 높은 성적을 낸 대회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으로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그 외 4강 진출은 총 3번 있었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했습니다. 

      ​1964 도쿄올림픽 — 6th위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 5위
      1972 뮌헨올림픽— 4위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1980 소련모스바 올림픽 —보이콧으로 불참
      1984 LA— 5위
      1988 서울 — 8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 예선 통과 못함
      1996 애틀랜타 올림픽— 6위
      2000 시드니 올림픽 — 8위
      2004 아네테 올림픽— 5위
      2008 베이징올림픽—  예선 통과 못함
      2012 런던올림픽 — 4위
      2016 리우올림픽— 5위
      2020 도쿄 올림픽 — 4위

       

      여자 배구의 황금기를 이끈 단 한 선수, 김연경

      신체 조건, 기술, 멘털까지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인 선수를 꼽으라면 누구나 이 선수, 김연경 선수를 뽑을 것입니다.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정하는 슈퍼 스타가 바로 그녀입니다. 김연경 선수의 국가대표팀 생활은 10대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2004년 아시아청소년여자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주니어 대표로서 태극마크를 달았고 이듬해인 2005년에도 세계유스여자선수권대회에서 대표로 뛰었습니다. 2005년, 국제배구연맹(FIVB) 그랜드챔피언스컵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신분으로 성인 대표팀에 뽑힌 이후 15년가량 대표팀을 위해 뛰어 왔습니다. 김연경 선수는 실력 있는 좋은 선수를 넘어 팀을 이끌어가는 에이스 역할까지도 해냈습니다.

      김연경 선수가 참여했던 2번의 올림픽 모두 4강에 오르며 한 선수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특히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한국이 4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예카테리나 가모바(Yekaterina Gamova)가 세운 204점을 제치고 올림픽 최다 득점(207점) 기록을 세워 최다 득점자이자 MVP로 뽑혔습니다. 김연경 선수는 현재 V-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국가대표에서는 2020 도쿄 올림픽 이후 은퇴했습니다. 이후 한국 대표팀은 올림픽 출전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아쉬움과 함께 김연경 선수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