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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3. 7.

    by. 오늘도00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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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종목 축구

       

      축구의 올림픽 역사는 꽤 흥미롭습니다. 축구는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가 아닐까 싶은데요. 올림픽 3대 인기 종목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할 정도인데요. 이런 축구의 올림픽 역사 속 이야기와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올림픽 도전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축구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 도전사

       

      • 출전 횟수 9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 2020 도쿄 올림픽 / 2024 파리 올림픽 출전 도전 중)
      • 세계 최다 연속 출전 : 9회 연속 (2024 파리 올림픽에서 10회 연 출전 도전 중 )
      • 최고 성적 : 동메달 (2012년 런던 올림픽)
      • 최다 득점자 : 최용수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최다 연속 출전 기록

      우리나라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10회 연속 출전이라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쓰기 위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파리 올림픽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오르면 연속 출전 기록을 9회에서 10회로 늘리게 됩니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처음 연속 출전 기록을 세운 건 2016 리우 올림픽입니다. 당시 세계 최다 연속 출전 기록이었던 8회를 이뤄냈습니다. 한국 다음으로 연속 출전 횟수가 많은 나라는 이탈리아입니다. 이탈리아는 7회 연속 출전 기록을 2회(1912-1948, 1984-2008) 기록했지만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면서 연속 기록이 깨졌습니다. 

       

      사상 첫 올림픽 메달 :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대한민국 대표팀의 최고 성적이자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땄던 대회는 2012 런던올림픽입니다. 조별리그에서 멕시코-스위스-가봉을 만나 1승 2무를 기록해 8강에 올랐습니다. 8강 상대는 영국 단일팀이었는데 축구 종주국이며 유럽 최고의 클럽을 보유한 국가였기에 어려운 승부가 예상됐으나 승부차기 끝에 승리했습니다. 힘겹게 개최국 영국의 단일 연합팀을 격파한 대한민국이 동메달 결정전에서 만난 것은 바로 '최고의 라이벌이자 숙적' 일본입니다. 이 경기 전까지 양 팀의 상대 전적은 4승 4무 4패로 같았으며 축구 한일전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 결정전으로 아시아 축구 라이벌의 대결에 전 세계가 주목했습니다. 한국 대표팀은 병역특례가 걸린 경기이자 한일전이고 최초의 메달 획득이 걸린 경기라 그야말로 '전쟁'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사활을 걸고 싸웠습니다. '일본 선수들이 발을 갖다 댈 때 대한민국 선수들은 머리를 갖다 댄다'라고 할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보여줬습니다. 첫 골은 전반 37분 박주영의 발에서 나왔습니다. 일본 진영에서 홀로 패스를 넘겨받아 단독 드리블로 3명을 따돌린 후 골을 넣었는데 이 모습이 리오넬 메시와 흡사하다고 하여 '박메시', '메시 빙의'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이 골은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든골, 박지성의 포르투갈전 발리슛과 함께 한국축구 대표팀 베스트 골로 꼽힐 정도로 역사적인 골입니다. 두 번째 골도 한국 팀에서 나왔습니다. 후반 11분경 정성룡 골키퍼가 길게 보내준 골킥을 박주영이 백헤딩으로 침투하는 구자철에게 전달했고 구자철이 왼발로 가볍게 한 번 트래핑한 후 추가골을 넣었습니다. 일본에 골을 허용하지 않은 채 2:0 완승을 거두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기타 기록들 : 전무후무한 전승 무실점 진출 / 최다 득점자 최용수 / 역대 최고 시청률 기록

       

      전승 무실점 본선 진출 : 2004년 아테네 올림픽대표팀은 예선 8경기에서 8승 12 득점을 기록, 무실점으로 예선을 통과했습니다. 특히 최종예선에서 이란, 중국, 말레이시아와의 6경기를 무실점 전승으로 통과한 것은 한국의 월드컵, 세계대회  역사에서도 없는 최초의 기록입니다.

      최다 득점자 최용수 :  역대 올림픽 아시아 예선 최다골 보유자는 '독수리' 최용수 선수입니다. 최용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예선에서 1차 예선 8골, 최종예선 3골을 넣으며 총 11골로 올림픽 아시아 예선 최다골 기록 보유자가 됐습니다. 

      역대 최고 시청률 : 드라마, 예능 등 모든 장르를 망라해 국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 국가대표 A매치가 아닌 연령별 대표팀 경기인 올림픽 축구입니다. 1996년 3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애틀랜타 올림픽 최종예선 결승이 한일전으로 치러졌는데 이 경기 공중파 TV 3사 시청률이 무려 70.5%였습니다. 이는 1991년 시작된 시청률 공식 집계 이후 국내 모든 TV프로그램을 통틀어 최고 시청률이었습니다. 

       

      올림픽 축구 대표팀에 연령제한이 있는 이유

      현재 올림픽 대표팀은 출전 선수 자격을 23세 이하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시행된 이 제로로 인해 올림픽 축구의 위상은 크게 변하게 됩니다. 가장 큰 변화는 A매치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나이 제한을 두게 된 이유는 FIFA와 IOC의 대립 때문입니다. 아마추어 정신을 강조해 올림픽에 프로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았던 IOC가 올림픽 인기를 높이기 위해선 프로 선수들의 출전을 허용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반면 FIFA는 올림픽 축구가 월드컵보다 더 인기가 좋아지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두 단체의 줄다리기 끝에 FIFA는 올림픽에 23세 이하 선수들을 출전시키기로 결정했고 IOC는 이를 수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로 꾸려지다 보니 월드컵보다 수준 낮은 경기력으로 비난이 일자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23세 이상의 선수도 3명까지는 포함할 수 있게 한 와일드카드 제도를 신설했습니다. 딱 한 번 예외가 있었는데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입니다.  당시 연령 제한이 23세 이하에서 24세 이하로 변경됐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대회 개최가 1년 연기되면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일시적 조치였습니다. 이후 다음 대회인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다시 23세 이하로 돌아왔습니다.

       

      올림픽 역사로 본 축구

      축구가 올림픽에 공식 등장한 것은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입니다. 1900 10 20일과 23일 이틀에 걸쳐 프랑스 파리 뱅센 벨로드롬에서 열렸는데 시범 종목이었기 때문에 메달은 수여되지 않았습니다. 출전국도 벨기에, 영국, 프랑스 3개 국가밖에 없었습니다. 1904년 대회까지도 시범 종목으로 치러지다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축구가 공식 경기로 포함되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5개국(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에서 72명의 선수가 참가해 런던에 있는 화이트시티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펼쳤습니다. 우승은 영국이 차지했습니다. 참가국이 급격히 늘어난 대회는 1924년 파리올림픽입니다. 4개 대륙 22개국이 참가했는데 이 대회에 처음 출전한 우루과이가 예선부터 결승까지 무패로 금메달을 따내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대회 최다 골 주인공은 우루과이의 '페드로 페트로네'라는 선수로 총 7골을 기록했습니다. 여자 축구는 1996년 하계 올림픽부터 공식 종목으로 채택돼 현재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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